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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세계

넷플릭스 다큐 베트남전쟁 1부 1858-1961년 데자뷔

지난 해는 유난히 베트남에 갈 일이 많았다. 심지어 2월 마지막 출장도 베트남이었고. 당분간 아니 올해는 물론이고 앞으로 2~3년 안에 예전처럼 자유롭게 국경을 오갈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긴 시간을 걸릴 것 같아 보인다. 이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번 바이러스로 많이 깨닫게 되었다.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 그리고 신념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나 베트남이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 등. 

 

관광지인 다낭이나 나트랑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이 호치민에서는 느껴진다. 젊고 활력있는 호치민의 뒤쪽에는 분명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부분들이 있다. 전쟁박물관은 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대한민국을 어떻게 느낄런지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물론 현재 베트남은 그 무엇보다 경제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모든 것들이 그 다음 순위로 미뤄두었었다. 적어도 바이러스가 이렇게 활약하기 전까지는. 

 

그런데 베트남 여행을 하면할 수록 좁혀지지 않는 이해의 폭이 있다. 중국 신민시기, 프랑스 식민시기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그 이해의 폭을 좁힐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들이다. 그들이 본래 어떤 전통을 가졌는지 원래의 성품이 어땠는지 어떤 문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에 아주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일테니. 

 

베트남전쟁은 한동안 미국에서도 서로 이야기하기 껄끄러웠던 주제로 보인다. 이 다큐멘터리의 1부 도입부에는 퇴역한 미국 군인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며 혼란과 혼돈의 시간을 보냈던 이야기를 한다. 사는 것이 고통이며 생존한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같은 작품을 떠올릴 만큼 베트남전쟁은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했다.  

 

5만8천명 이상의 미국인 사망
남베트남군 최소 25만명이 전투에서 사망
북베트남군인과 베트콩 게릴라는 백만 이상 사망
남과 북을 합쳐 2백만의 민간인 사망 추정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도 수만명 사망 추정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전쟁이었고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직도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넷플릭스 다큐 중에는 미국과 관련된 작품이 많은데 상당히 깊고 다양하게 내용을 다루기 때문에 시작하는 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이 <베트남전쟁> 역시 10부로 상당히 양이 많고 내용은 다소 우울하다. 인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알아둘 필요가 있는 내용일 것이다. 

 

1부는 1858년부터 1961년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프랑스식민시기부터 베트남이 남과 북으로 나뉠 때까지의 이야기다. 미국의 다큐멘터리로 미국을 기준으로 풀어나가는 느낌이고 마지막 존.F.케네디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1부가 마무리된다. 

 

일단 다큐를 보기 앞서 베트남전쟁의 키워드가 너무 많아서 복잡하기 짝이 없다. 이 나라는 꽤 오랜 기간 중국의 식민지였고 그 이후에는 프랑스 식민지 그리고 오랜 시간 베트남 전쟁을 겪었다. 남과 북으로 갈라졌으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 양 극단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중간에는 베트남왕조가 끼어있다. 다큐에 나오는 부분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부터다. 

 

다큐에 등장하는 프랑스, 미국 등은 저마다 목표가 다르다. 프랑스는 식민지를 유지하고 싶고, 미국은 아시아의 공산화를 막고 싶다. 베트남은 통일된 나라를 원한다. 서로 다른 목표를 가졌고 아쉽게도 각자의 방향이 너무 다르다. 베트남은 공산주의를 원한게 아니라 통일된 나라를 원했고 그것을 미국이 도와줬으면 했다. 그러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냉전시대에 빠졌고 결국 공산화를 통한 통일 국가를 이루게 된다.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미국은 결국 실패했고 베트남전쟁은 미국 전반에 큰 깨달음을 줬을 것이다. 1부에서 잠깐 한국전이 등장하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역사와 세계 여러 나라의 관계를 둘러보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큐에 등장하는 내용 중 년도별로 주요 이슈들만 간단히 기록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트남전쟁>

 

1부 데자뷔 1858년 ~ 1961년 

 

1858년 

프랑스 나폴레옹 3세 시기 베트남 다낭 공격, 인도차이나 점령 시작 

 

1884년 

베트남 전국토가 프랑스 식민지가 됨.  

청나라와 청불 전쟁에서 승리 후 제 2차 세게 대전까지 통치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전 지역을 점령하는데 50년이 걸림
최대한 프랑스처럼 꾸몄고 꼭두각시 황제 프랑스말을 하는 베트남 고위 관료들 고용 
도로, 운하, 철도, 다리 건설 
나라의 모든 자원을 지배 

 

1890

호치민 프랑스 점령 치하에서 태어남

 

1911년 

호치민 베트남을 떠나 30년간 망명생활을 함

 

1919 

호치민 70여개의 가명을 사용함

프랑스, 미국, 런던, 파리를 돌며 살다가 
레닌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인도차이나 공산당 설립을 도움 

 

1933년~1936년 
뉴딜 정책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의 베트남 침입

일본의 자원 수탈 시작 

 

 

1941년 

호치민은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으로 들어 옴 
본부를 세우고 카를 마르크스라고 칭하고 혁명 운동 조직 
베트남 독립 연맹 베트민을 만듬 
베트민이 되고 싶던 사람들도 그게 공산주의인지도 몰랐음 

 

+ 보응우옌잡 장군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 
정규전을 치를 수 있기 전까지는 게릴라 전술에 따른다는 독특한 전쟁 이론을 확립해둔 상태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 대항하는 전술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기습을 노림 
전투를 선택하는 것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일본의 항복 

 

베트남은독립선언 하노이 바딘 광장에 모임 
미국이 베트남 독립을 지원할거라고 믿었음

 

1946년 

베트남과 프랑스의 1차 인도차이나 전쟁 

 

1947년  
마셜 플랜

 

1949년 

소련의 핵무기,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 군대 중국 점령 
영국령이었던 버마, 말레이반도 독자적인 반란 사태 

 

1950년 

마오쩌둥 호치민의 반란군을 공식 인정과 지원
소련도 베트민 인정 도움 제안
 

1950년 6월 

중국의 동맹국인 공산주의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한 침공 한국전 시작 
트루먼 대통령은 수만 명의 미국 지상군을 한반도에 투입 
미군과 연합군은 침략군을 북으로 몰아냄 
그러는 동안 중국 남쪽에서는 마오의 군대가 베트민을 현대적인 군대로 탈바꿈시켜 프랑스 점령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줌 


1950년 7월 

트루먼 행정부는 비밀리에 수송기와 배 한척 분량의 군용 지프를 베트남에 보냄
35명의 군사 고문관 포함 
이때 공식적으로 미국은 베트남에 진출 

1950년 10월 

중공군 북한 합류 인해전술로 격렬한 한국전 
트루먼은 베트남에서 프랑스의 전쟁에 군수 지원을 계속 늘려감 
한국에서 공격에 승리하면 아시아, 유럽과 북반구 전체로 영향력을 확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봄

1952년 

아이젠하워 당선 강경노선 
베트남과 프랑스전쟁의 30%를 미국의 세금, 이후 80%까지 가게 됨 (7년간의 전쟁)  

1953년 7월 

유엔과 공산주의 협상자들 한국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에 서명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이것을 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가 억제될 수 있다는 증거로 봄 

1953년 가을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전쟁을 끝내는 대화를 시작할 용의가 있음을 알림 
호치민도 동의  
제네바에서 만나기로 함 

베트남을 잃으면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잃게 된다고 여김  
자유진형의 패배로 생각함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베트남군 대승 

프랑스군 철수 

베트남의 독립 

제네바 협정 
호치민과 잡 장군은 중국과 소련의 지원없이 전쟁을 계속 할 수 없었고 
중국은 이미 한국전에서 백만 병사를 잃은 후 다른 전쟁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고 
소련은 서구와의 긴장 관계를 완화하고 싶었음 

한국전을 끝낸 것 같은 분단 협정문을 
아무도 만족하지 못했다 
임시로 17도 선에서 분단 됨 
북쪽에 있던 프랑스군은 남쪽으로 남쪽의 베트민은 북쪽으로 이동하기로 함
DMZ 비무장지대를 만들기로 함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를 왕으로 내세워 베트남국 수립 

응오딘지엠의 쿠테타로 베트남 공화국 설립 

남북의 대결 시작 

미국은 남쪽에 제대로된 정부를 세우려고 했음 
남베트남의 민주화를 도우려고 함 
시골까지 다스리기 쉽지 않음 
프랑스는 응오딘지엠이 성공하기를 바라지 않았음 
'그는 전할 메시지가 없는 메시아였다'  

 

1955년 

아이젠하워는 응오딘지엠 지원을 중단하기로 함
응오딘지엠은 프랑스 몰아냄 
초대 대통령이 됨

 

존.F.케네디 대통령 당선   

 

*베트콩

민족 해방 전선 NLF